Friday, November 06, 2009

[이사람] “과거 책임지지 않는 사회엔 미래 없어”

An interview article by the Hankyoreh Daily of Dr. Martin Salm, the Chairman of the Board of Directors of the Foundation Remembrance-Responsibility-Future who was invited to 2009 TRCK's Interntional Symposium held on October 27, 2009.



He's emphasizing the necessity of facing the past atrocities by saying, "there is no end in dealing with the past atrocities, but only transformation how we deal with them."
The organization he's been chairing is called "Foundation Remembrance-Responsibility-Future (EVZ)" and playing a significant role to compensate the victims of the forced labor in Germany during the WWII. Funded by both Germany government and private industries, which most of them have no what-so-ever affiliation to the WWII, the EVZ was established with 5 billion Euros raised by the German government and private industries, and spent approximately 4.7 billion Euros to compensate the 1.7 million survivors, victims, and their families, who reside in over 100 countries across the world.

At the interview with the Hankyoreh Daily, Dr. Salm explained how the EVZ was named, implying Germany's continueous responsibility for the painful past, yet may be in slightly different ways, despite the compeling public opinions of "we've done enough and let's move on now." in German society. He also stated, "It is impossible to move on to the future without confronting the past atrocities with tiredless efforts." Most importantly and thankfully, there was a social consensus in Germany that we have a responsibility to deal with the past as long as the surviving victims or the bereaved families exist.

After completing its reparation mandate, the EVZ is now focusing on the human rights education for young generation. Dr. Salm added one of the ultimate purposes of our work is to assist the youth to establish the humanitarian principle, and thus to create a social environment where human rights of indivisuals are respected, and this is achieveable only through educating the youth.

Lastly but not the least, he commented a significant souce to have pushed the EVZ activities so far were the pressure from international community, civil groups, and victims' organizations.


독일 ‘기억, 책임, 미래 재단’ 마르틴 잘름 이사장

김민경 기자

"과거사 정리에는 ‘끝’이란 없습니다. 다른 방식으로 ‘변형’될 뿐입니다.”
독일 ‘기억, 책임, 미래 재단’의 마르틴 잘름(Martin Salm·54·사진) 이사장은 독일의 경험을 들어 과거사 문제를 이렇게 정리했다. 이 재단은 독일의 전후 보상 문제를 담당하는데, 지난 2000년 독일 정부와 기업 등이 약 50억유로(8조8800억원 안팎)을 출자해 설립했다. 지난 2007년 7월까지 폴란드, 우크라이나 등 100개국에 거주하는 2차 대전 강제 징용 노동자·희생자 및 유가족 170만명에게 약 47억유로를 보상했다.


동유럽 전후보상 위해 2000년 설립…7년간 47억유로 보상
기금잔액 연구·교육에 투자 …“인권존중 풍토 정착이 목표”


잘름 이사장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세계 과거사 청산의 흐름과 한국의 과거사정리 후속조치 방안 모색’을 주제로 27일 여는 국제심포지엄에 참석하기 위해 우리나라를 찾았다.

그는 지난 24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한겨레>를 만나 “재단 이름에는 과거를 직시해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자는 뜻이 담겨 있다”며 “무엇보다 재단의 존재는 독일의 ‘과거에 대한 지속적인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독일의 과거사 문제는 1990년대 후반, 독일 통일 이후 동유럽 쪽 보상 문제 등이 불거지면서 사회적 논쟁을 낳았다. ‘이미 60년이나 지난 일이다. 지난 60년간 우리는 할 만큼 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과거는 잊어야 한다’는 반론이 만만치 않았다고 했다.


잘름 이사장은 “과거사와 대면하는 ‘고단한 노력’ 없이, 미래로 나아간다는 건 불가능하다”며 “무엇보다 피해자나 유가족이 살아있는 한 과거사 정리를 계속 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데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재단은 보상금 지급을 마친 뒤에도 지금까지 남은 기금으로 역사연구, 생존자 지원 등을 계속하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를 위한 인권 교육에 중점을 두고 있다. 잘름 이사장은 “젊은 세대가 인본주의적 가치관을 갖도록 돕고, 인권을 존중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과거사 정리의 궁극적 목적”이라며 “그래서 인권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잘름 이사장은 독일에서 과거사 정리가 가능케 했던 원동력으로 국제사회·시민사회·피해자 단체의 압력을 꼽는다. 그는 한국의 과거사 정리 문제에 대해 “베를린 시내 한 복판에 거대한 유대인 추모공원을 만든 것처럼, 볼 때마다 기억하도록 눈에 보이는 위령시설을 설립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일방적인 보상이 아니라 피해자들과 항상 열린 마음으로 대화해 나가는 태도도 꼭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글·사진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Korea's Conservative Political Climate Hinders the Effort to Deal with its Past Atrocities

Two standing commissioners at South Korea's Truth and Reconciliation Commission talked about the difficulties it is facing in the overwhelmingly conservative domestic political climate. Invited presenters from Germany, England, Rwanda and Peru provided fresh insights to perceive the Korea's efforts to set the transitional just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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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적 정치환경, 과거사 해결 어려워"
국제심포지엄서 친여 진실화해위 상임위원도 불만 토로

2009년 10월 27일 (화) 21:25:15 고성진 기자 kolong81@tongilnews.com


이영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상임위원은 27일 한국의 과거사 정리의 평가와 과제와 관련해 "국회 전반적으로 정치 환경이 전반적으로 보수적이기 때문에 문제"라며 "대통령도 한나라당에 속해 있고, 한나라당이 여당이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보수 기조를 가지고 있고, 이 때문에 문제 해결이 어렵다"고 말했다.


▲이영조 진실화해위 상임위원.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이 상임위원은 이날 진실화해위 주최로 열린 국제심포지엄 종합토론의 사회자로 나와 "한국의 경우, 정치적 환경이 과거사 문제를 해결할 정도로 무르익지 않았다"며 이같이 비판했다.

바른사회를위한시민회의 사무총장 등을 역임한 이 상임위원은 현 위원회의 상임위원 가운데 가장 보수적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그의 비판은 정부의 과거사 정리 의지 등에 대한 불만 표출로 보인다. 그는 내년 1월,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이 상임위원은 "호의적이지 않은 정치 환경은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전 세계적으로도 진실위원회가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고 만족하지 못했던 결과를 알고 있다"며 현재 정치 환경에 대해 강한 비판을 쏟아부었다.

토론자로 나온 김동춘 상임위원은 민주화 이행기 과정에서 나타난 과거사 정리와 관련, "이행기 정의에 약간 회의적"이라며 "이행기에 들어서지 않은 나라도 있는가 하면, 들어섰다가 역전된 나라, 한국과 같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과거의 인권 침해가 재발하는 상태에서 이행기 정의가 적절한 지 재검토해야 한다"고 현재 상황을 비판했다.

김동춘 상임위원 "아시아 과거사 문제, 유럽과 차이"

김 상임위원은 아시아의 경우, 유럽식 과거사 정리와는 다르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시아는 냉전이 끝나지 않은 상황"이라는 점을 첫 번째 차이로 꼽았다.


▲ 김동춘 진실화해위 상임위원.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다음으로는 "독일이 과거사 정리에 나설 수 있던 것은 결국은 독일이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가 외적으로는 유럽에서 여러 나라들과 공존하기 위해서이며, 독일 내에서의 사회운동 때문"이라며 내.외적 요인이 동시에 작용했다고 봤지만, 반면 아시아 국가는 내.외적 요인의 어느 한 부분이 강하게 작용했다고 봤다.

김 상임위원은 "일본이 과거에 대해서 반성을 하지 않는 이유는 미국과의 관계 때문에 과거를 정리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며, "한국의 과거사 정리 수준은 대단한 수준인데, 이것은 밑으로부터의 사회운동의 힘 만큼 진행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상임위원은 또 "과거사 정리의 성공 여부는 기억을 얼마나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기억을 현재화하는 능력이 아닌가 싶다"면서 "기억을 현재적인 문제에 적용할 수 있는 집단적, 사회적 역량만큼 성공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기억을 현재적인 것으로 만드는 데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미디어"라면서 "우리 위원회가 아무리 진실을 밝혔다고 해도 미디어를 통해 국민들에게 알려지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 있겠나"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 진실이 지금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에게 연결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면서 "이 두 가지 문제를 어떻게 결합시키느냐에 따라서 과거사 정리의 성공 여부가 결정된다"고 바라봤다.

이날, 서울 충무로 매경미디어센터 12층 대강당에서 '세계 과거사 청산의 흐름과 한국의 과거사 정리 후속조치 방안 모색'이라는 주제로 열린 국제심포지엄은 리 페인(Leigh Payne)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53), 박선기 '르완다 국제형사재판소' 재판관, 살로몬 레르네르(Salomon Lerner Febres) 전 페루 진실위원장, 마르틴 잘름(Martin Salm) '기억.책임.미래재단' 이사장 등이 각각 발제를 맡았고, 안경환 전 국가인권위원장, 이석태 변호사, 박구병 아주대 교수, 송충기 공주대 교수 등이 토론에 참여했다.


▲ 27일 진실화해위 주최로 서울 충무로 매경미디어센터 12층 대강당에서 '세계 과거사 청산의 흐름과 한국의 과거사 정리 후속조치 방안 모색'이라는 주제로 국제심포지엄이 열렸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Monday, October 12, 2009

Bereaved Family Asso

Obama won this year's Nobel Peace Prize, and we sense cautiously favorable political climate concerning issues often disregarded by the predecent government in the US. In amid of this, the below claim made by the bereaved family association of the NOGUNRI incident victims in Korea yesterday begins attracting the public attention once again. NOGUNRI is where hundreds of fleeing refugees were killed by the US troops during the Korean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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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근리유족회 "美 노근리보고서 축소.왜곡"

(영동=연합뉴스) 박병기 기자 = 노근리사건희생자유족회(위원장 정은용)는 9일 "지난 2001년 미 국방부가 발표한 노근리보고서가 축소.왜곡됐다"며 전면적인 재조사와 피해자 배상을 요구했다.

유족회는 이날 성명을 통해 "당시 현장에 있었던 미군 병사가 최근 청주문화방송 다큐멘터리(노근리는 살아있다)에 출연해 '(피란민에 대한) 사격명령이 있었다'고 증언했고, 같은 부대 기록병도 '사단장이 하달한 명령 문서와 예하부대에서 올라온 민간인 사살 관련 보고서를 본적이 있다'고 증언했다"며 "노근리 사건이 우발적으로 일어났다는 미 국방부의 노근리보고서는 축소.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단체는 이어 "이 다큐멘터리는 노근리 학살의 명백한 증거인 존 무초(6.25 당시 주한미국 대사) 서한에 대해서도 '무초 서한이 노근리사건과 관련없는 것으로 처리된 점을 납득할 수 없다'는 미 국립문서기록보관소 연구원의 증언 등을 담고 있다"며 "미 정부는 가해 군인의 증언과 무초의 문건이 노근리보고서에서 빠진 이유를 설명하라"고 덧붙였다.



이어 "인권국가를 자처하는 미국은 노근리사건의 진상을 축소.왜곡한 데 대해 공식 사과하고 재조사와 더불어 손해배상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미 양국은 1999년 AP통신의 보도에 의해 노근리 사건이 세계적 이슈로 확대된 이후 2001년까지 공동조사를 벌인 뒤 '군인들에 의한 우발적인 사건으로 군 지휘부의 사살 명령은 없었다'는 보고서를 냈다.

bgipark@yna.co.kr

Friday, September 18, 2009

Ground Enabling Ones to Stand Firm

I felt weak for the past couple of months. Despite the hours of physical training of pushing myself to limits, my mind still was not clear and my strength still didn't seem to find its way back. I was having this constant headaches, anxiety along with a few other bodyaches here and there. I can't argue that my anxiety and aches were probably partly induced by the pathetic work ethic and the attitude of a boss who I can't avoid the daily contact and am directly involved for my performance evaluation; in other word, I lived in a living hell for most of my awaken hours. Well, I won't waste my breath for the unworthy thing. Anyways, I suffered for the last few months feeling vulunerable and indefensible of myself until last night.

You might wonder what had happened then? Nothing spectacular. I happened to visit one of my fellow coworkers' apartment with other ladies at work. Her house was filled with this welcoming aura and the scent from a whole bunch of petite flowers and herbs of which names I've never heard of. First, your nose and eyes would pleasantly entertained with the fresh odor and low-lit candles. Second, you would feel embraced by the hostess's warm welcoming gestures, well displayed by a variety of delicious home-made dishes. Then, everything followed by this aroma of freshly roasted coffee and eased body as ladies fill the air with their laughters and chat away their anguish. After the ladies' night gathering at Ms. Lee's terrace last night, I feel much recharged, eased, and found a solidarity therein.

A newly revealed truth: we don't need much to gain our strength back in the dark hours, it is people in whom you find TLC.

Thursday, September 17, 2009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

I am not yet knowledged enough to comment anything on the writings by Kim Ji-ha, a Korean poet; the author of "Five Enemies (오적)," "With Burning Thirst(타는 목마름으로)," etc. Finding them this morning gave me a chance to flash back (perhaps this is not a right choice of term, since I wasn't there to comprehend the intensity of the situation) or think back of the Korea's turbulent political climate of late 1980s and early 1990s, accompanied by the international relations it had then and the impact therefr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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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벗들!

나는 너스레를 좋아하지 않는다. 잘라 말하겠다. 지금 곧 죽음의 찬미를 중지하라. 그리고 그 굿판을 당장 걷어치워라. 당신들은 잘못 들어서고 있다. 그것도 크게!

이제나저제나 하고 기다렸다. 젊은 당신들의 슬기로운 결단이 있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숱한 사람들의 간곡한 호소가 있었고,여기저기서 자제요청이 빗발쳐 당연히 그쯤에서 조촐한 자세로 돌아올 줄로 믿었다. 그런데 지금 당신들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정권보다 큰 생명

생명이 신성하다는 금과옥조를 새삼 되풀이 하고 싶지는 않다. 하나 분명한 것은 그 어떤 경우에도 생명은 출발점이요 도착점이라는 것이다. 정치도 경제도 문화도,심지어 종교까지도 생명의 보위와 양생을 위해서 있는 것이고 그로부터 출발하는 것이지 그 반대는 아니다. 근본을 말살하자는 것인가? 신외무물이 무슨 뜻인가? 당신들 자신의 생명은 그렇게도 가벼운가? 한 개인의 생명은 정권보다도 더 크다. 이것이 모든 참된 운동의 출발점이어야 한다. 당신들은 민중을 위해서! 라고 말한다. 그것이 당신들의 방향이다. 당신들은 민중에게 배우자! 라고 외친다.

그것이 당신들의 공부이다. 민중의 무엇을 위해서인가? 민중이 생명의 보위,그 해방을 위해서일 것이다. 당신들이 믿고있는 그 해방의 전망은 확고한가? 목적에 대한 신념은 과학적으로 확실한가? 만약 그것이 기존의 사회주의라면 그 전망은 이미 끝이 났다. 만약 그것도 아니라면 민족이 패망하는 극한 상황도 아닌터에 생명포기를 요구할 정도의 목적의 인프레션 따위는 있을수도 없으며 다만 뼈를 깎는 기다림과 겸허한 모색이 있을 뿐이다. 모색하는 자가 매일 매일 북치고 장구칠수 있는가? 도대체 그 긴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는가? 왜 덤비는가?

모색과정에도 위기에 대한 긴급한 행동은 있을수 있다. 하나 그때의 행동은 달라야 한다.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 당신들은 분명히 알고 있다. 그런데 지금 당신들은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당신들은 민중에게서 무엇을 배우자고 외쳤는가? 어떠한 경우에도 포기하지 않는 끈질긴 생명력과 삶의 존중,삶의 지혜를 놔두고 도대체 무엇을 배운다고 하는가?

어느 민중이 당신들처럼 그리도 경박스럽게 목숨을 버리던가? 당신들은 흔히 지도 라는 말을 쓴다. 또 선동 이란 말도 즐겨쓴다. 스스로도 확신 못하는 환상적 전망을 가지고 감히 누구를 지도하고 누구를 선동하려 하는가? 더욱이 죽음을 찬양하고 요구하는가? 제정신인가,아닌가? 과학 이란 말을 자주 쓴다. 그것이 과학인가? 그보다도 더 자주 정치 라는 말을 쓴다.

그것이 정치인가? 분명히 못박아 말하지만 정치란 도덕적 확신에 기초한 엄밀한 이성과 수학의 세계다.

자살 전염 부채질

당신들에겐 분명 그것이 없다. 없으면 없는 대로 학생운동 본연의 순결한 정의감,그리고 대안적 정열이 요구하는 바대로,그리고 혼란한 전환기에 대응하는 확률적인 모색의 태도로 전시민적인 요청에 대답하는 합당한 행동을 선택하라. 그런데 지금 당신들 무슨짓을 하고 있는가?

전환기는 필연이 아니라 우연이 지배하는 것이 특징이다. 실수하기 안성맞춤이다. 조심하지 않으면 안된다. 하나 지금 당신들은 조심성이 있고 없고의 차원을 훨씬 넘어섰다. 당연한 얘기지만 고전적인 마르크스레닌주의나 주사파의 스테레오타입마저 이미 이탈했다.

철부지라는 말도 정확하지 않다. 당신들은 지금 극히 위태롭다. 생명은 자기 목숨이라 하더라도 함부로 할 수 없는 무서운 것인데 하물며 남의 죽음을 제멋대로 부풀려 좌지우지 정치적 목표아래 이용할수 있단 말인가? 그럴수 있다고 대답하는 모양인데,그렇다. 바로 그 대답에 당신들의 병의 뿌리가 있고 문제의 초점이 있다.

지금 당신들 주변에는 검은 유령히 배회하고 있다. 그 유령의 이름을 분명히 말한다. 네크로필리아 시체선호증이다. 싹쓸이 충동,자살특공대,테러리즘과 파시즘의 시작이다.

이미 당신들의 화염병은 방어용 몰로토프 칵테일 수준을 넘어서고 있었다. 파괴력에서가 아니라 상황과의 관계상실과 거기에 실린 당신들의 거의 장난기에 가까운 생명말살충동에서다. 당신들의 그 숱한 죽음을 찬미하는 국적불명의 괴기한 노래들,당신들이 즐기는 군화와 군복,집회와 시위때마다 노출되는 군사적 편제선호속에 그 유령이 이미 잠복해 있었던 것이다. 당신들은 맥도날드햄버거를 즐기며 반미를 외치고 전사를 자처하면서 반파쇼를 역설했다. 당신들의 구호와 몸짓은 이미 순발적 정열을 이탈하여 의식화되었다.

나는 그곳에서 이미 오래전에 일본 전학연의 몰락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이 모순을 어찌할 셈인가? 그런데 한술 더 떠 지금 당신들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자살은 전염한다. 당신들은 지금 전염을 부채질하고 있다. 열사호칭과 대규모 장례식으로 연약한 영혼에 대해 끊임없이 죽음을 유혹하는 암시를 보내고 있다. 생명말살에 환각적 명성을 들씌워 주고 있다. 컴컴하고 기괴한 심리적 원형이 난무한다.

종교냐 유물 이냐

삶의 행진이 아니라 죽음의 행진이 시작되고 있다. 그것이 해방의 몸짓인가? 무엇을 해방할 작정인가? 귀신인가?

절정은 당신들의 그 혼을 분리하는 굿에 있다. 시체가 당신들 것인가? 왜 탈취하려 하는가? 그 시체의 주인공이 조선시대의 사대부집안의 그 가족도 없는 종인가? 왜 가족을 무시하는가? 그러나 그보다 더 치명적인 것은 당신들의 그 기괴한 이원론이다. 당신들은 육체와 영혼의 분리를 인정하고 있다. 당신들의 결정적 파탄의 증거다. 묻겠다. 당신들의 신조는 종교인가? 유물주의인가? 육신을 경멸하고 영혼의 찬란한 해방을 광신하는 고대종교인가? 육신의 물질성만을 주장하는 속류 유물주의인가? 도대체 어느쪽인가?

도대체 그놈의 굿판에 사제노릇을 하고 있는 중과 신부의 정신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악령인가? 성령인가? 저는 살길을 찾으면서 죽음을 부추기고 있는 이른바 진보적 지식인들은 선비인가? 악당인가? 당신들은 지금 굿에서의 이른바 불림 을 행하는 모양인데, 불림 에는 조건이 있는 법이다.

영매는 자기목적이 없어야 하고 불림 의 대상은 귀신 이 아니라 신명 이어야 한다. 검은 귀신이 아니라 밝은 신명이라고 주장하겠지. 그러나 젊은 벗들! 귀신은 영육분리의 형상이지만 신명은 영육합일,몸과 함께만 현상한다네! 그래서 신명은 곧 생명이라네. 당신들의 귀신숭배는 더욱이 급진적 폭력을 동반함으로써 바로 네차예프사건과 인민사원의 집단학살,그리고 연합적군 모리(삼)그룹의 산장에서의 피의 인민재판을 예고하고 있다. 죽음숭배,귀신숭배의 결과는 풍수의 표현으로 당판,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비수터,울부짖는 터,갈기갈기 찢어지는 참혹한 종말이다. 어찌할 작정인가?

운동은 이제 끝장

젊은 벗들!

지금 곧 죽음의 찬미를 중지하라. 그리고 그 소름끼치는 의사굿을 당장 걷어 치워라. 영육이 합일된 당신들 자신의 신명,곧 생명을 공경하며 그 생명의 자연스러운 요구에 따라 끈질기고 슬기로운 창조적인 저항행동을 선택하라.

나는 군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잘라 말하겠다. 내 말을 듣지 않겠다면 좋다. 할대로 해보라. 당신들 운동은 이제 끝이다! 그래도 지성인이라면,최소한 내말을 접수라도 한다면 지금 이 글을 읽는 순간 자신의 신조가 무엇인지 스스로 묻고 대답해야할 것이다.

종교인가? 유물주의인가? 대답이 다행히 창조적 통일로 끝났을때,그때 우리는 현정권에 대한 효력있는 저항을 참색할수 있을 것이다. 부디 자중자애 하라. 부디 절망하지 말라. 절망은 폭력과 죽음,그리고 종말의 서곡이다. <시인>

Wednesday, September 16, 2009

원통한 忌日, 1961.5.25



아버지가 군 수사기관의 조작으로 사형당했다는 통보를 받은 심한운 씨가 15일 충남 서산시 고북면 봉생리 집 안방에서 아버지 심문규 씨의 사진과 사형선고 판결문, 방첩대의 조서 등을 놓고 한스러운 과거를 되씹고 있다. 서산=지명훈 기자


Korea's Truth and Reconciliation Commission recently ascertained that Shim Mun-kyu, a lieutenant of Korea's HID (Headquarters Intelligence Department), was dispatched to the North Korea, captured by the North and resent to the South as a double spy, yet voluntarily surrendered upon his arrival in the South. However, Shim was interrogated for one and a half year before he was wrongfully convicted as a double spy and got executed soon after. The only survivor of his family among three children and wife is a son, whose suffering in his life would what god only knows.

북파공작원 48년전 이중간첩 몰려 억울한 죽음
아들의 진실찾기에 진실화해위서 ‘조작’ 확인

“아버지가 억울하게 사형당한 줄도 모르고 수십 년을 살았습니다. 기일을 몰라 매년 설날과 추석이면 제사상을 차렸는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관계자에게서 아버지가 이중간첩으로 몰려 사형당한 것은 당시 군 수사기관의 조작 때문이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심한운 씨(60·충남 서산시). 그는 서랍장 깊은 곳에 고이 모셔뒀던 아버지의 사진과 사형선고 판결문을 꺼내들고는 물끄러미 바라보다 큰 한숨을 쉬었다. 청년시절부터 아버지의 소식을 듣기 위해 전국을 누볐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갔다. 그의 아버지인 심문규 씨는 육군첩보부대(HID) 소속으로 북파됐다가 북에서 체포돼 대남간첩교육을 받은 뒤 2년 만에 남파돼 자수했지만 이중간첩으로 몰려 사형을 당했다.


진실·화해위는 15일 “‘특수임무수행자 심문규 이중간첩사건’을 조사한 결과, 북한군에게 체포됐던 심 씨가 북에서 대남간첩교육을 받고 남파된 뒤에 자수를 했음에도 육군첩보부대가 증거도 없이 심 씨를 위장자수로 몰아갔던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육군첩보부대에서 563일 동안 불법 구금당한 채로 신문을 당한 심 씨는 남파간첩 검거 등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 뒤에 중앙고등군법회의에 기소돼 사형 판결을 받고 1961년 5월 대구교도소에서 처형당했다. 한운 씨는 1959년 외숙모 손을 잡고 간 육군본부 장교형무소 면회실에서 본 아버지의 모습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당시 아버지는 “공부는 잘하고 있느냐, 북파공작원이라 여기 와 있다. 아버지는 곧 나갈 테니 걱정마라”고 했다. 그것이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 될 줄은 당시는 미처 몰랐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만삭의 어머니는 극약을 마시고 세상을 등진 지 오래였다. 당시 다섯 살이었던 누이동생도 갑작스럽게 체해 세상을 떴다. 한운 씨는 어머니와 누이 얘기에 목이 메어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아버지가 남파간첩이라는 소식에 집안에는 발길이 뚝 끊겼다. 아버지의 소식을 전해 주는 이도, 알아볼 방법을 가르쳐 주는 이도 없었다.


구두 기술자, 운전사 등 철이 들면서 안 해본 일 없이 고생을 한 한운 씨였지만 아버지 소식을 들을 수 있다면 만사를 제쳐두고 달려갔다. 아버지처럼 북한으로 파견됐던 특수임무수행자들을 찾아 귀동냥을 하며 아버지 소식을 수소문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아버지가 이중간첩으로 몰려 사형당했다는 소식을 알게 된 것은 2006년의 일. 아버지의 소식을 애타게 찾는 한운 씨의 사연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군 당국이 당시 아버지의 사형 판결문을 전달해 줬다. “1961년 5월 25일, 이날이 아버지가 사형당한 날이자, 기일이라는 것을 알기까지 수십 년이 걸렸습니다.”


진실화해위의 조사를 통해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확인했지만 한운 씨는 아직 할 일이 많다. “아버지처럼 북파됐다가 생사도 모르는 가족들이 있는데도 숨 죽여 살고 있는 나 같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재를 털어서라도 아버지와 함께 파견됐던 동료들의 가족을 돕고 싶습니다.”


진실화해위는 이날 “국가는 심 씨의 가족에게 사과하고 명예회복을 위한 재심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라”며 북파공작원 운용과 관련된 자료를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권고했다.



“It has been so hard living without a father all this time. How could my poor father and my brothers and sisters ever be compensated for our lives?”

Sim Han-un found it impossible to continue speaking. The 59-year-old is the son of Sim Mun-gyu, a man who had served as an Headquarters Intelligence Detachment (HID) agent in a South Korean counter- intelligence military unit and was framed as a double agent at a court-martial, and executed at an Army prison.


In a report released Tuesday from its investigation of Sim’s case, the South Korean Truth and Reconciliation Commission (TRC) wrote, “It has been confirmed that an innocent person was executed through the fabrication of a case by the HID.” The commission recommended to the government that necessary measures be taken, including an apology to Sim’s family and a review to rehabilitate his reputation.


What happened to Sim Mun-gyu’s life could be said as indicative of what has taken place in South Korea’s turbulent history as a nation under Japanese colonial rule to war and then national division. His home is Cheorwon, now located in Gangwon Province, which fell in North Korean territory before the armistice line was as a result of the Korean War.



Sim had a favorable view of South Korea, and he joined the South Korean Army in the 6th division reconnaissance corps for the 17th regiment in December 1950, when the tide was turned by the South Korean Army with the Incheon landing. He began his HID activity at the 6th division’s intelligence office.


“Before Liberation, my father voluntarily joined the Japanese army and was assigned to the Kwantung Army in Manchuria, and he ended up captured by the Soviet and Chinese armies and spending time as a prisoner-of-war,” explained Sim Han-un. “He was fluent in Chinese and was aware of the surrounding geography, and these were suitable for fulfilling intelligence duties,” he added.


Sim Mun-gyu was in unemployed in Seoul following the war’s end when he received a proposal from HID asking if he might like to work again. In Sept. 1955, he left behind his wife and three children and went to North Korea by way of the East Sea coast. “I heard that the Army coaxed him into it, telling him he would work as an officer when he came back,” Sim Han-un recalled.


Unfortunately, Sim Mun-gyu was caught by the North Korean army while carrying out his duties, and after going through one year and seven months of training as a spy against South Korea, he was assigned to “assassinate key figures” and sent back south. Sim, who had family in Seoul, turned himself in to HID as soon as he arrived back in South Korea, but military prosecutors at the time charged him with “surrendering under false pretenses.” In May of 1961, he was executed at Taegu Prison. “It seems that for senior military figures at the time, HID agents dispatched to North Korea who came back alive like Sim were nuisances who could not just be released back into society,” said an official with the TRC.


Sim’s children lived harsh lives after their father’s unjust death. Sim Han-un explained, “My mother took her own life just before my father was sent to North Korea, and the second eldest child died of disease at the age of five.” Sim Han-un himself was unable to graduate from middle school because of the family’s dire financial situation.


Following enactment of the Compensation for Persons Engaged in Special Military Missions Act, which was created to provide consolation for the past suffering of HID agents deployed to North Korea, Sim Han-un applied for benefits but was rejected. He said that he will request a court review of his father’s execution and is seeking damages from the state.

Tuesday, September 15, 2009

Ithaca


Ithaca

By Constantine P. Cavafy, as translated from Greek by Stratis Haviaras

As you set out on the way to Ithaca
hope that the road is a long one,
filled with adventures, filled with understanding.
The Laestrygonians and the Cyclopes,
Poseidon in his anger: do not fear them,
you’ll never come across them on your way
as long as your mind stays aloft, and a choice
emotion touches your spirit and your body.
The Laestrygonians and the Cyclopes,
savage Poseidon; you’ll not encounter them
unless you carry them within your soul,
unless your soul sets them up before you.

Hope that the road is a long one.
Many may the summer mornings be
when—with what pleasure, with what joy—
you first put in to harbors new to your eyes;
may you stop at Phoenician trading posts
and there acquire fine goods:
mother-of-pearl and coral, amber and ebony,
and heady perfumes of every kind:
as many heady perfumes as you can.
To many Egyptian cities may you go
so you may learn, and go on learning, from their sages.

Always keep Ithaca in your mind;
to reach her is your destiny.
But do not rush your journey in the least.
Better that it last for many years;
that you drop anchor at the island an old man,
rich with all you’ve gotten on the way,
not expecting Ithaca to make you rich.

Ithaca gave to you the beautiful journey;
without her you’d not have set upon the road.
But she has nothing left to give you any more.

And if you find her poor, Ithaca did not deceive you.
As wise as you’ll have become, with so much experience,
you’ll have understood, by then, what these Ithacas mean.

Tuesday, September 08, 2009

Future of Korea's Truth and Reconciliation Commission

Many inquire what would happen to the commission when its term is over? It had a press conference yesterday. Pls. see below for more details on the iss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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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 Ahn’s term comes to a close, concerns mount as Lee administration seeks TRC term extension and possible reversal on decisions by conservative commission

Ahn Byung-wook, the Commissioner of South Korea’s Truth and Reconciliation Commission, held an unusual press conference on Sept. 7. He solemnly began with, “Since my term is nearing its end, I want to make my opinion on the TRC’s work clear.” His two-year term will finish in November.
He said, “The TRC will continue to work five months beyond the completion of my term as commissioner, and during that time, the TRC has important work to carry out, including publishing the final report under a new commissioner.” Ahn added, “Although I do not know who will be the new commissioner, my hope is that the TRC’s record of accomplishments will not be shaken.”
Several progressive members on the TRC besides Commissioner Ahn, including Kim Dong-chun, professor of SungKongHoe University, will finish their term in November or December. Progressive figures in the TRC have played a great role in determining what the TRC’s decisions have been. Accordingly, many observers are concerned that the TRC may become dominated by conservatives after Ahn and other progressive figures leave the commission.
Some are saying the worst scenario is that the TRC’s term will be extended, and conservatives will take over control and reverse decisions made by a progressive TRC. A successor is expected to serve for five months until April 2010, however, some are saying there is a possibility that the Lee administration may extend the commission’s term by two years in order to reverse many of the decision that have been made.
Current commissioners are making it clear that they are opposed to extending the TRC’s term. They are arguing that while they have only reviewed and closed 6401 cases or 58.1 percent of the 11,017 citizen petitions that have been filed, they have concluded the most important cases on their docket. A TRC official says, “Many TRC officials are concerned about an extension of the TRC.”
In July, the TRC had asked the Cheong Wa Dae (the presidential office in South Korea or Blue House) to pass a law compensating victims who were killed during the Korea War instead of a law extending the TRC. There has been no response.
Commissioner Ahn says, “Victims’ issues are not something to cover up, and although the TRC was established under late President Roh Moo-hyun, the current administration could benefit from recognition for changing its mind a little.”
He says he intends to ask for a meeting with President Lee Myung-bak to discuss this problem.


진실화해위 11~12월 ‘물갈이…과거사 청산 ‘풍전등화’
안병욱 위원장 등 임기 3개월 남아“위원회 미래에 대한 불안감 팽배”‘뉴라이트’ 들어와 ‘기존 결정’ 뒤엎을까 걱정

길윤형 기자 이경미 기자

» 7일 오후 서울 혜화동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부검실 유골보관실에서 고양 금정굴 민간인학살사건 유족들이 지난 1995년 발굴된 고양시 일산 금정굴 학살 유골 임시 보관처에서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안병욱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위원장이 이례적으로 7일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그는 굳은 표정으로 “임기 종료를 앞두고 위원회의 입장을 명확히 밝히려 합니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안 위원장의 2년 임기는 11월 말 종료된다.
“제가 물러난 뒤에 위원회 활동 시한은 5개월이 남습니다. 그때 새 위원장으로 누가 오실지 모르지만, 최종 보고서 작성 등의 중요 업무가 남아 있습니다. 부족하지만 진실화해위가 일궈낸 성과가 흔들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안 위원장만이 아니다. 김동춘 상임위원 등 진보학계 출신 인사들의 임기도 11~12월께 대부분 마무리된다. 진실화해위가 내린 많은 결정에서 이들은 큰 역할을 했다. 그 때문에 진보적 역사학자들을 중심으로, 이들이 물러난 이후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급격한 보수화에 대한 우려다. 안 위원장도 이날 간담회에서 진실화해위의 성과가 ‘풍전등화’의 위험 앞에 놓였음을 내비쳤다.
특히 이들이 거론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위원회 활동 연장→보수적 인사들로 위원회 ‘물갈이’→기존 결정의 번복이다. 안 위원장의 후임 위원장 임기는 2010년 4월까지로 5개월에 불과하지만, 위원회 활동 기한을 2년 연장해 기존의 결정을 뒤집을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서우영 ‘진실정의포럼’ 사무국장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은 뉴라이트 계열 인사들이 진실화해위를 장악한 뒤, 위원회 활동 기한을 연장해 그동안의 의미 있는 결정들을 뒤엎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권경석 한나라당 의원 등은 올해 초 정부가 진실화해위 결정에 불복해 재심을 신청할 수 있는 길을 트는 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를 염려한 진실화해위는 활동 시한 연장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날까지 전체 진정접수 사건 1만1017건 가운데 60%에도 못 미치는 6401건(58.1%)만 처리된 상태지만, 이미 주요 사건에 대한 처리가 어느 정도 끝났기 때문이기도 하다. 김동춘 상임위원은 “이미 주요 사건들에 대해서는 결정과 판단이 내려진 상태”라고 말했다. 진실화해위의 다른 관계자는 “안 위원장 이후 위원회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져 활동 시한 연장을 걱정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진실화해위는 활동 시한 연장 대신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을 일괄처리할 수 있는 ‘배·보상 특별법’의 제정과 진실화해위 이후 꾸준히 과거사 정리 작업을 해나갈 ‘과거사 연구재단’ 설립 등을 지난 7월 청와대에 건의했지만 아직 회신을 받지는 못했다.
“과거사는 적당히 덮는다고 해서 덮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전임 정부(참여정부)가 시작한 일이라도 새 정부(이명박 정부)가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과거사 청산으로 인한 모든 공이 새 정부의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안 위원장은 이런 건의를 위해 곧 이명박 대통령에게 면담을 신청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는 “언론과 시민들의 관심이 식은 듯해 안타깝다”며 “정부의 태도가 바뀌려면 국민들이 더 많은 관심을 갖는 길밖에 없다”고 말했다.